엘소드(Elsword)

[애드팸] 거울상3

월하(月河) 2016. 6. 25. 02:32

Day8 ~ 데이터의 결말

성가셔...

아트와 통화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근육돼지는 내 허리를 껴안고 놔 줄 생각을 안 한다. 덕분에 따뜻하긴 하다만 움직임의 제약이 많아 불편하다.

"루사..."

몆 시간째 이 모양이다. 내가 부르면 금새 자는 척을 하며 더 들러붙는다. 쳇!

"연구에 방해되니 제발 좀 놓지?"
"넌 알고 있었냐? 걔네 둘 사귀는 거."
"인제 눈치챘군."
"이미 알고 있었다만 다들 숨기는 눈치라서. 사트에겐 내가 아는 거 비밀로 해 줘."

건성으로 '그래.'라 대답한 뒤 다시 데이터에 몰두했다. 쏟아지는 숫자들과 수치들. 너희들은 내 물음에 답을 줄 수 있을까?




"분석한 결과 이 세계에는 없는 구조 같다."

저녁을 건성으로 먹으며 아트에게 지금까지 분석한 정보를 전달했다. 사트는 피곤하다며 나오지 않았고 아트는 지쳐보이지만 식물 얘기에 금새 눈을 반짝거린다.

"...결론은 이 세계 생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그럼 어떡하죠?"
"다시 나타나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을 일이다만 어째 그럴 거 같지 않군. 근데 타트는 어디 있지?"

원래 늦게 나오는 녀석인지라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오늘은 영 안 올 분위기다. 제 형과 다르게 밥은 꼭 챙기는 녀석인데...

"오다보니 문 잠겨 있었어요."

문득 저번 통화가 생각났다. 아주 잠깐이지만 파랗게 변했던 얼굴과 당황한 음성이 좋지 않은 예감을 쿡쿡 찔렀다.

"타트 녀석은 내가 챙길테니 넌 사트에게 가 봐."
"네. 안녕히 주무세요."

어느 정도 회복된 모양이다. 궁금증도 일단락 됐고 아픈 것도 참을만 해진 걸까.

"먼저 일어날게."

루사를 놔두고 음식을 적당히 챙겨 타트의 방으로 향했다. 잠긴 문 너머로 기척이 없다. 문을 부숴야 하나?

'규칙 1조 1항 문 잠그고 들어간 사람을 귀찮게 하지 말 것.'

그래. 단순히 실험이 안 끝난 걸 수도 있겠지. 노크를 한 뒤 문 아래 구멍으로 음식을 밀어넣었다. 이거라도 열려 있으니 다행이다.




그 시각 타트는 디에의 실험실에 있었다. 차원을 이동할 수 있는 오직 둘만이 올 수 있는 그곳엔 기형의 인간이 마족화된 다이너모로 감싸진 채 수면에 빠져 있었다.

"완성했다."

광기인지 집착인지, 복합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두 눈은 기묘했다.

"어떠냐, 내 작품이?"

타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 말도 안 하는군. 망가진 것에 대한 연민인가? 크하핫!"

타트의 오른쪽 얼굴이 뒤틀린다. 붉게, 검게, 푸르게, 보랏빛의 각인이 진동하자 눈쌀이 절로 찌푸려진다. 고통스러워하는 타트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디에는 타트의 오른쪽 눈을 뽑아버렸다.

"그 불쾌한 시선도 오늘이 마지막이군. 이제 한 쪽 밖에 없으니 안대 따윈 필요 없겠지?"

디에의 손에서 하늘하늘 흔들리던 안대가 찢어졌다. 지켜봐. 난 반드시 이룰 거니까. 네가 버린 우리의 꿈을 내가! 반드시!! 성공시킬 거니까!!!
 웃으며, 디에는 기형의 인간과 함께 차원의 틈으로 사라졌다. 아무 저항도 않던 타트는 울며 자조했고 그의 검게 물든 눈은 붉은 액체를 뿜어냈다. 그 모습이 가히 위협적이여서 마족이 강림한 것이라 오인할 상황이었다.




Day9~ 새벽
 
'탁 타닥 드르륵'

주인 없는 실험실을 누군가 뒤지고 있다. 앉아있다고 바뀌는 것은 없기에 소년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러기를 몇 시간째. 드디어 원하는 것을 찾은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흐릿한 시선으로 자신의 손목을 보았다.

"좌표설정."

위험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Day 10~ 방심하지 마

오늘도 연구실은 평화로웠다. 시끄러운 것보단 낫지만, 따분하다.

"루사한테나 가볼까..."

...

...

...


그래. 이 몸이 친히 방문해볼까?

그러나 계획은 실현되지 못 했다. 방을 나서려 일어선 순간 그 녀석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마마, 위험해!"
"대낮부터 무슨..."

헛소리냐고 쏘아붙이려 했다. 이어진 강력한 소음만 아니었다면.

'우당탕탕탕!'

건물이 흔들리고 가루가 떨어진다. 간간히 돌조각이 떨어지는 게 보였고 나를 감싼 루사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안 다쳤어?"

피투성이가 된 채 묻는다. 내 몫까지 받아낸 모양이다. 다행히 건물이 붕괴되진 않아서 조심스레 구급상자 쪽으로 갔다.

"...읏..."
"엄살 부리지 마."

신음하는 녀석을 봐주곤 구급상자를 들고 복도로 나왔다. 부디 무사해야 할 텐데..!

"아트!"

이쪽은 상황이 더 안 좋아보였다. 직격탄을 맞은 듯 이곳저곳이 붕괴되어 있었고 벽에 구멍도 나 있었다.

"사트는 어디 있어?"

아트를 짓누른 돌을 들어올리며 루사가 물었다. 다행히 몸은 괜찮아 보였다. 부러졌을 순 있겠지만 절단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밖으로......"
"여긴 내가 맞지. 필요하면 엄호하겠다."

혼절한 아트에게 응급처치를 하니 루사가 제 동생을 데리고 돌아온다. 이미 혼절한 상태. 충격을 그대로 받은 건지 상태가 말이 아니다.

"찾다가 다친 거냐."
"살릴 수 있나?"

감아준 붕대 위로 흐르는 피에 낮게 빛나는 눈빛이 짐승의 것과 닮았다. 어떤 놈이든 가만두지 않겠단 눈빛에 등골이 서늘하다.

"가만두지 않을 거다."

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절대 가만두지..."
"굿 데이 투 다이."

응급처치를 끝낸 난 싱긋 웃으며 최후판결을 내렸다.

"다이너모, 전투 모드로!"



**



"크하하학!"

마을 집 서너개를 한 번에 날린 존재가 뒤를 돌아본다.

"부숴버려!"

한 마디, 한 마디에 터전이 날아가고 삶이 사라진다.

"신나. 너무 신나!"

누군가의 즐거움은 타인의 악몽을 자아냈고, 그 악몽으로 빚어진 미소는.






"팬저 버스터!"



비명소리로 물든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네 녀석들..."
"정신 차려! 왜 그러는 거야?"
"......크하하핫! 몰라서 묻는 거냐? 네놈들이 원하던 강력한 힘. 내가 손에 넣은 이 힘을 보라고? 어때? 멋지지 않나?"
"그래서 마을을 쑥대밭을 만들고 있는 거냐!"
"흥. 너희들이 원하던 게 이런 거 아니었나?"
"제정신이냐!?"

웃는 미소가 루시퍼처럼 황홀하다.

"이제 날 막을 수 있는 건 없어! 전부 내 손에 넣어 더 강해지겠다. 협조할 생각이 없다면 비켜서라."
"그렇게 둘 것 같아?"
"아포칼립스!"

강력한 전파장이 진동한다. 빛, 전기, 먼지. 자욱한 연기 속에서 나타난 건 승리가 아닌 잃어버렸던 소중함.

"너...넌!"

정확하겐.

잃어버렸다 '되찾았다'고 생각한 소중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