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의 회상
이런 생각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약한 감상. 그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감정이 없는 내가 이런 걸 느껴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아토믹 블래스터."
조용히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쓸어버린다. 한 때는 감정회로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닫아버렸다. 아키텍처와 엑조틱 외의 새로운 코드가 발견되면서 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 내린 특단의 조취. 그것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를 더 강하게 단련시켰다.
무리의 우두머리쯤으로 인식되는 거대한 몬스터가 앞을 가로막는다. 앞으로 하나. 너만 없애면 이곳은 내가 가지게 된다. 결의를 담은 붉은 기운이 몸을 감싼다.
"한시적 리미트 해제. 퀸스 쓰론!"
오늘에야 말로 알테라코어를 탈환한다. 알 수 없는 돌로 된 몬스터들이 알테라 섬을 점령하면서 퐁고족들은 모두 멸종했고, 이곳은 현재 나소드와 한 때 살았던 종족들의 잔재만이 황무지처럼 남아있을 뿐 그 어떤 생명체도 없다. 이곳에 온 지도 어언 한 달. 더 이상의 시간 지체는 위험했다.
"으윽.."
우두머리는 우두머리였다. 강한 녀석을 상대로 감정회로가 있던 과거였다면 상황이 조금이라도 달랐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없애면 된다. 그게 무엇이든.
"루나틱 스커드"
돌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있던 자잘한 것들까지 섬멸했다. 대적하지 못할 최후의 스킬, 하이퍼 액티브라 이름 붙인 마스터피스(masterpiece). 광기를 품고 하늘을 가르는 탄도 미사일은 여왕의 앞에서 그녀의 고향을 되찾아주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 잔 여왕이 자신의 작은 왕국을 본다. 모든 것이 부서졌지만 코어만큼은 보존되어 있어 몰락한 나소드킹을 되살리는데 성공했다. 공장은 다시 가동되었고 기존보다 진화된 나소드들이 생산되어 그들의 작은 왕국을 건설했다. 모든 시스템이 안정화되고 나소드킹이 자신의 의무를 다할 수 있을 때 여왕은 긴 수면에 들어갔다. 언젠가 자신과 같은 고대 나소드가 나오길 바라면서.
긴 시간이었다.
꿈에서 여왕은 '동료'라 불리던 사람들과의 여행을 시작했다.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다. 요리를 하다 태우고, 빨래를 하다 물살에 옷을 놓치고, 장난을 치며 가다가 나무에 머리를 박은 붉은 머리 소년을 한심하게 보기도 하고, 저처럼 나소드를 연구하던 흰 머리 소년과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나소드가 많던 아틀라스에 가고, 그리고, 또, .........
"언제 돌아오실 것입니까, 여왕이시여."
부스스. 일어났지만 꿈에 본 이들 중 지금 그녀의 곁에 있는 '동료'는 없었다. 감정회로를 닫아버렸기에 느껴지는 것은 없었으나 구석 한 켠에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의식을 계속 괴롭혔다. 항상 궁금했었다. 알테라를 탈환하고서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것이 무엇인지, 그 때 수면을 선택한 것이 단순히 쉬기 위함이었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가벼운 복장으로 나소드들의 배웅을 받으며 엘리오스 대륙으로 향했다. 바랬다. 누구든 좋으니 아직 남아있는 사람이 있기를. 머리 속에 긴 머리의 궁수가 떠오른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여왕은 간절히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