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소드(Elsword)

[애드] Travel over years(TOY) - 엘소드 전력 2016. 6. 25 장난감

월하(月河) 2016. 6. 25. 23:00

'와르르'

 

나무토막들이 자리를 이탈함과 동시에 표정이 무너져내린다. 들려오는 싫은 소리와 씩씩거리는 소리에 다급히 달려온 눈동자에 담긴 것은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져 억장이 내려앉은 아이의 축 처진 어깨였다. 분명 슬프고 안 좋은 상황인데 회상이란 수면에 떠오른 모습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웃음을 겨우 참은 시선은 기척을 내며 아이의 옆에 앉는다.

 

"아가."

"내가 열심히 쌓은 건데 무너져버렸어."

 

화가 난 건지 속이 상한 건지 그 경계에 있는 목소리로 제 어미를 올려다보는 아이는 실망스러운 눈치였다.

 

"엄마 보여줄려고 열심히 쌓은 건데..."

 

그 모습이 마치 어릴적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자식을 쓰다듬는 손길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이어진 포옹에 아이는 어리광을 부렸다. 다음에는 꼭, 멋있는 탑을 보여주렴. 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도 매를 맞는다. 궂은 일을 해본 적도 없지만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자신은 이런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닥을 쓸고 가구를 닦는다. 손이 트고 여러 차례 채워진 인생이란 족쇄는 목에 선명한 상흔을 남겼다. 번번히 자신을 탐하려는 어른들과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상인들의 등살에 피골이 상접한 몸은 움직이는 것 자체가 무리.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은 구타였고 남는 것은 싱싱한 흔적이었다.

 

'와르르'

 

날아온 손지검에 중심을 잃고 휘청이다 물건들을 정리해서 넣어둔 상자를 엎어버렸다. 상자와 물건들에 뒤섞여 바닥을 나뒹굴었다. 예의 사내새끼가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선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소리를 하며 새주인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노예 주제에. 제대로 정리해 놔!"

 

충격에 오그린 것도 잠시, 들려온 발소리에 벌떡 일어나 물건들을 상자에 담았다. 집이 불타기 전 크고 안락했던 방에는 푹신한 침대와 가벼운 합금으로 만든 다양한 모형들, 여러 지식이 담긴 책, 천으로 만든 고양이 솜인형, 아버지께서 갖다주신 나소드 미니어처들이 있었다. 자동차와 나소드를 가지고 놀던 어느 하루는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사라진 나소드 정찰병 모형을 찾느라 온 집을 뒤진 적도 있었다. 실수로 제 발에 차인 그것은 하인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채이다가 어머니의 침실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아버지께서 처음 주신 것으로 각별한 애정이 있던 것을 잃어버린 아이의 얼굴에는 '찾았습니다.'란 한 마디에 다시 웃음꽃이 피었었다. 어머니는 작은 상자를 하나 가져오셨고, 그 사건 이후 장난감을 가지고 논 다음에는 그 상자에 담아 보관했다. 정리를 하던 손이 차츰 느려졌다. 뺨을 강타한 아픔보단 다른 곳이 더 아픈 것 같았다. 소년의 망막에 바닥에 어질러진 나무토막들이 맺혔다.

 

 

 

**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까!"

"어, 어, 어!?"

 

'와르르'

 

고귀한 마족씩이나 된다는 녀석들이 하는 짓을 몇 시간째 시큰둥하게 관찰하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카드, 인형, 뽀루쿠키, 이외의 여러가지 물건들을 가지고 놀던 마족들은 일정한 크기의 나무토막들로 탑을 쌓다가 무너뜨린 참이었다.

 

"쯧.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가지."

 

핀잔에 가늘게 뜬 실눈이 돌아오자 머쓱해진 당사자는 눈치를 살피며 방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쓸어올리는 손길에 후회가 묻어있었다. 심통을 부렸다. 이성과 계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조금 전의 행동은 감정의 폭발 또는 과거에 대한 감상에서 기인한 것 같았다. 그러나 어째서 배가 아픈 것인지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었다. 왜. 나는. 그런.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일까?

 

 

 

'톡'

'톡'

규칙적으로 나무가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이상하리만치 규칙적이고 균일한 소리는 나무토막을 쥔 손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장 좋은 음악은 규칙적이면서도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란 규칙 아래,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어린아이였던 어른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스름이 내려앉고 어둠이 지평선을 덮은 한밤중. 방문이 열리고 슬리퍼 끌리는 소리가 거실로 이어진다. 곧이어 얕은 한숨 소리와 함께 마루가 삐걱거렸다.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나무토막을 줍는 어른의 눈은 심연만큼 깊게 침잠해있었다.

 

"정리란 단어는 아는 건지..."

 

정리를 하길 한참, 모아진 나무토막에 별안간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피식, 바람 빠진 듯한 미소를 지으며 커진 손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탑을 쌓기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와르르.

 

"아..."

 

말이란 것은, 대화란 것은, 화자와 청자가 없으면 성립될 수 없는 공식과도 같은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뒤이어 혀 끝에 올려진 문장은 더 이상 들어줄 대상이 없었고 해줄 대상 또한 없었다. 그럼에도 쉽사리 내려놓지 못 하고 입술을 달싹이던 어른은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히 읊조렸다.

 

"보여주려고 쌓은 건데."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해본다. 그러나 어른이 된 어린아이의 동심은 이미 오래 전에 무너져버렸다. 와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