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사마마] 부부유별
"루사아아아아!"
오늘도 여지없이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애드는 혀를 찼다. 한 두 번 있는 일이었다면 무슨 일인지 궁금할 법도 했겠지만 이미 여러 차례 있는 일이다 보니 별 감흥이 없다. 한 가지 흥미를 끄는 점이 있다면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정도였다.
"내가 내 연구자료에 손대지 말랬지이이!!!"
"마마, 그게... 아악!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마마!"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저 분들은 내 가족이다. 두 분 다 남자이며, 썩 닮은 생김새에 타인들은 터울이 긴 형제나 사촌, 또는 삼촌과 조카 정도의 관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건넛방에서 열심히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은 아버지 루나틱 사이커이며 자신보다 덩치가 큰 사내를 열심히 패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어머니라 불러야 할 마스터마인드다. 그리고 나는 갓난아기 때 입양된 입양아이다.
상황이 조용해진지 1시간쯤 지났다. 이쯤되면 바깥 상황이 정리되었을 것이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조용히 거실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식탁의자를 든 채 벌을 서고 계셨다.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있는 모습이 꼭 기 죽은 강아지 같다.
"아버지, 이번엔 뭐 하셨어요?"
"...알 거 없어."
"또 공식 지우셨어요?"
뜨끔하는 표정을 보니 맞나보다. 아버지 루나틱 사이커, 줄여서 루사는 어머니인 마스터마인드, 마마의 데이터를 가끔 지우곤 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므로 이것은 방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어머니의 습성 때문에 생긴 일종의 버릇이라고 판단된다. 그도 그럴 것이 들어가면 몇 날 며칠, 길게는 한 달 이상 홀로 방치되니 참다 못한 아버지께서도 강경책을 사용하시는 것 같다.
"애드, 잘 들어. 마마가 들어간 지 오늘로 딱 한 달째야. 그리고 이게 벌써 5번째지. 나는 더 이상 이런 방치를 용납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있지 않기로 결정했어."
저 말을 들은 게 아마 1년쯤 전이었을 거다. 의아하게 쳐다보니 의미심장하게 웃기만 하던 아버지가 다음 방치 때부터 하기 시작한 일이 바로 데이터지우기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성격이 무서워 처음에는 지워져도 크게 상관없는 데이터들만 지운 것 같았는데 그게 별 효과가 없자 그 때부터 지우면 안 되는, 꽤 중요한 공식들만 골라서 지운 것 같다. 예를 들면 그 공식이 없으면 더 이상 연구가 불가능하다거나, 다시 알아내기에는 시간이 아까운 공식들이라든가.
데이터가 지워질 때마다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셨고, 그 때마다 아버지는 벌을 서셨다. 그러다가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셨고 어머니는 내게 저녁을 주신 후 한숨을 푹푹 쉬며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두 분 모두 다음날 늦은 오후나 되서야 나오셨다. 어머니의 연구가 길었던 날들은 이틀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서 내가 노크를 한 적도 꽤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데이터 지우기가 있은지 한달이 지났다.
"마마아아아아!"
예상한 것과 반대쪽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바야흐로 아버지가 연구로 칩거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시는 사이 어머니께서 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가 킥킥거리면서 나오시는 것을 봤다.
"이걸 지우면 어떡해!!!"
그대로 어머니의 연구실로 처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이번엔 어머니가 벌을 서시겠구나... 곧 펼쳐질 것 같은 재밌는 장면을 상상하며 방 문 틈으로 엿보았으나 기대와는 다르게 복도는 금새 조용해졌다.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여 방에서 나와 살금살금 다가가 어머니의 방문에 귀를 대보았다. 깨달음은 금방 왔다. 이번엔 어머니 방에서 며칠 나오지 않으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