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데이터를 분석하러 책상 앞에 앉은 주인님은 특유의 기품과 냉정함을 발산하고 있다. 지금의 주인님을 처음 본 건 약 10년 전 쯤이었다고 한다. 기록에 확신이 없는 건 데이터의 유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초기의 다이너모가 아니다.
주인님은 강해지길 원하셨다. 누구보다 빠르고, 강하며, 그래서 다시는 자신을 업신여기는 자가 없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모시게 된 주인의 유일무이한 목적이었다.
"...젠장! 결과가 예상값과 다르잖아!"
이미 충분히 강하신 것 같은데 여전히 힘을 갈구하는 주인님은 특유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종이를 집어던졌다. 강박증이 도진건지 이마를 짚은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철야 17일째. 이쯤되면 내 동족이란 생각이 든다.
고른 숨소리가 방을 지배한다. 평화로운 표정을 보니 오늘은 악몽이란 걸 꾸지 않는 것 같다. 망하지 않게 조심조심 이불을 덮어드리지만 유연성이란 기능은 없어서 기어이 뒤척이고 마는 주인님을 보며 팬소리를 죽였다. 다행히 더 움직이진 않았다. 행운이든 당연이든 목적을 달성했다. 주인님 의견대로 '쓸모없는 망할 고철덩어리'는 아닌가 보다.
다른 방에서 충전 중이던 주인님을 가장 오랫동안 지킨 나소드가 온다. 저것엔 나는 모르는 여러 데이터들이 암호가 걸린 채 보관되고 있다. 듣기로는 나소드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옆에 있던 것이라고 했다. 그 데이터들을 소장하고 싶었지만 나는 허락된 백업장소가 아니었다. 오래된 나소드가 길을 비켜준다. 배터리 잔량을 보니 더 이상의 기록은 불가능하다. 충전이 필요하다.
--------------------------------------------------------------------------------------
방금 나간 녀석은 제일 마지막에 만들어진 것이다. 가장 반질반질하며 새 것이기에 성능도 좋다. 오래된 녀석들도 이미 부품 교체와 업그레이드를 통해 진화했지만 태생이 다른 것이 부럽다. 생물은 오래 살수록 연륜이란 기능이 생긴다고 하는데, 기계에게는 마냥 좋은 소식은 아니다.
새 것이라 그런지 녀석의 배포는 주인을 닮았다. 거침없이 목표를 향해 나간다. 공격적인 성향의 나소드를 원한 주인은 자신의 6번째 창작물을 가장 강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내 데이터에 손을 대려 했다. 주인은 나를 퇴물쯤으로 여기는 반면 늦게 만들어진 녀석일수록 아끼는 것 같았다. 나를 볼 때는 심박수가 아주 안정적인데 저것을 볼 때는 미세하게 그 파동이 다르다. 그것은 주인이 매력적인 실험체를 발견했을 때 나타나는 파형과 비슷했다. 알만큼 아는 나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나 보다. 보호할 데이터가 없었다면 이미 뜯겨서 새로운 다이너모나 드론을 만드는데 쓰였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는 쓸모없는 망할 고철덩어리란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상체가 건강해보이지 않는다. 철야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연구에 매진하던 것이 엊그제 같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저런 것일까.
"네 외관과 부품이 닳는 것과 비슷한 거야."
내 질문에 귀한 데이터인 놀란 얼굴을 잠깐 보여준 주인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었다. 그런 쓸모없는 데이터는 쌓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뒤로 명령이 아니면 대답하지도 질문하지도 않았다. 기계는 목적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이대로 허공에 떠 있으면 엘 아까운 줄 모른다고 할 것이다. 책상은 주인이 차지하고 있어서 앉을 수 없다. 주인을 옮기자니 '망할 고철덩어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침대에 있자니 '빌어먹을 고철덩어리'를 들을 것 같다. 오늘 보초는 바닥에서 해야 겠다. 그나마 카펫이 깔려 있으니 저번처럼 흠집이 나진 않을 것이다.
--------------------------------------------------------------------------------------
"내 이름은 에드워드 그레노어. 날 찍는 것의 이름은 다이너모. 초기 프로토타입에서 많이 변화시켰지만 그래. 이 몸이 만든, 나소드다."
흔적도 희미한 오래된 기억의 소리가 들린다. 꿈인 줄 알았던 소리가 점점 선명해진다. 몽롱함과 다른 이질감에 꿈에서 느껴지는 선명함인지 가늠해보다 눈이 떠졌다. 돌아온 의식에 망막에 맺힌 것은 아주 오래된 기계, 내가 걸어온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는 나의 분신과 같은 다이너모였다.
"누가 함부로 꺼내보라고 했지?"
으름장을 놓듯 스크린을 꺼버리자 느리게 다이너모가 올라온다. 눈높이를 맞춘 스크린에 '죄송합니다.'란 간단한 문구가 뜬다.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봤다. 다이너모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 같았다.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묻어버린 기억이 다시 살아난 것이 언짢을 뿐이었다.
"주인님."
"...뭐지?"
"나중에, 만에 하나 주인님께 아이가 생긴다면 이 이야기를 들려줘도 되겠습니까?"
"......넌 내가 아이를 갖길 바라냐?"
"......"
"결혼도 하고?'
"......"
"그딴 건 강해지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오히려 약점이 될 뿐이야."
"이제는 힘보다 소중한 것을 찾으실 때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다이너모는 냉정했다. 나는 이미 흘러가버린 세월의 산물로서 지나간 과거에 대해 보상받을 수 없다고 했다. 추억도, 저택도, 과거도 새로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주인님을 닮은 아이에게는 다른 결말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나에게, 나와 닮은 나의 아이에게 새로운 미래를 주라고 했다. 그것은 가능하며,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내가 만든 것이지만 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이너모는 웃음소리 비슷한 것을 냈다. 그래봤자 녹음된 것이지만 왠지 그게 친근해서 웃어버리고 말았다. 다이너모가 조금 전의 소리를 조금 더 크게 냈다. 이 녀석이 미소짓는 걸 본 것은 내 착각일 것이다.
--------------------------------------------------------------------------------------
"진짜 그랬어?"
"예."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제법 주인님을 닮았다. 천진난만한 목소리에 심박수를 체크하니 다소 상기된 듯 하다. 평소보다 살짝 빨라져서 긴장했지만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라 판단되어 경보시스템을 껐다. 사내아이의 웃음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자신의 우상을 찾는다.
"아빠! 아-빠-!"
저 멀리서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비척비척 걸어오는 주인님이 보인다.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지만 연구소에서만 지내던 지난날의 어두운 빛은 없었다. 얼굴이 다소 상기되고 심박수도 평상시보다 빠른 것을 보면 들뜬 상태라고 추정된다. 사내아이가 달려가자 팔을 벌려 안아드는 모습은 익숙해 보였다.
"아빠, 다이너모가 아빠 어린 시절 보여줬어! 아빠가 다이너모 만들었데!"
주인님이 가장 오래된 것을 쏘아본 것 같지만 못마땅한 시선은 아이의 기습뽀뽀에 빠르게 사라졌다.
"내 나이에 아빠가 다이너모를 만들었데! 아빠 대단해!!"
아이의 심박수가 빨라져서 그런지 주인님의 심박수도 빨라졌다. 연결되어 있단 것은 서로의 상태를 공유하는 것인가 보다. 결혼을 하시고 아이가 생기신 뒤로 더 자주 미소지으시는 것이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문득 오래된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져 그것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까 있던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무슨 소리를 내고 있다. 작지만 사람의 웃음소리 같다. 아이를 안은 주인님이 그것과 점점 가까워졌다. 이후 내가 기록한 것은 짧게 이어진 낮은 웃음소리였다.
'엘소드(Elswor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나틱 사이커] Beautiful mind (0) | 2016.10.23 |
---|---|
[루사마마] 부부유별 (0) | 2016.09.11 |
[디에마마 → 루사마마] Stainless Silver (0) | 2016.07.22 |
[디에타트] Crevasse (0) | 2016.07.17 |
[엘수색대 전원] 나약함과 이별할 시간입니다. - 2016.6.26 전력 이별 (0) | 2016.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