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을 뛰어가고 있었다. 방금 전 나와 같이 걷던 친구는 웬 남자에게 살해당했다. 나는 그 남자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어두운 수풀을 뛰어넘어 도착한 곳은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고속도로. 잠시 멈춰 선 나에게 


'빠-앙!'


이것이 이번 생의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눈을 떠보니 나 대신 도로에 누워있는 것은 내 친구를 죽인...어?


느껴지는 온기에 고개를 드니 붉은 눈동자가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회색빛 하얀 머리카락이 트럭의 헤드라이트를 받아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괜찮나?"


이것이 우리 둘의 첫만남이었다.

 

 




*




"작지만 불편하시진 않길 바래요."

"작군."

"혼자 사니까요."

"혼자?"

"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근본은 동일할 텐데?"

"예?"

"위험하다고."


 남자는 눈을 감고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 뿐이었다. 내가 멋쩍게 웃자 그의 눈이 형형해졌다. 혀라도 찰 기세였다.


"여기보다 좋은 곳은 비싸죠. 아무래도 치안이 안정된 동네는 집값이 비싸거든요."

"......내참. 여긴 그런 문제가 있군."

"그런데 혹시 외국분이신가요? 다른 곳에서 오신 것 같아서요."

"......"


그냥 궁금해서 물은 건데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무섭잖아...


"넌 이름이 뭐지?"

"아! 전 이벨리아(Evelia)에요. 짧게 이브라고 불러요."

"......"

"당신은 이름이 뭐에요?"

"...애드."

"아까는 고마웠어요, 애드씨."


난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냥 감사의 뜻으로 딱히 해줄 것이 없어서.


"흠...물 좀."

"에...네! 잠시만요!"


순간 볼이 붉어진 것 같은 건 내 착각이겠지? 내 뭘 보고 얼굴이 붉어지겠어...



이벨리아 퀸(Evelia Queen). 지금은 몰락했지만 한 때는 거대 사업가의 딸이었다.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어도 따돌림당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늘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빚을 갚기 위해 먼 곳으로 가셨고, 나에게 그 빚을 주기 싫다면 호적에서 파내버린 뒤 부모님과는 연락이 끊겼다. 그래도 계속, 어떻게든 연락을 하고자 했으나 돌아오는 건 반송된 편지들 뿐이었다.


"계세요?"

"누구세요?"

"아, 혹시 여기 아담 퀸씨의 집 아닌가요?"

"퀸? 아, 전에 살던 분들이요?'

"예! 맞아요!"

"그분들이라면 이사간지 몇 달 됐어요."

"...혹시 언제 이사오셨는지 여쭤도 될까죠?"

"글쎄요...제가 여기 한 석달 쯤 살았으니 그 전에 나가셨겠죠?"


"여기 있어요."


 감사하단 말과 함께 닫혀버리는 문을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석달이면 호적에서 파내졌단 소식을 접한 그날과 같은 달. 어쩌면 애초에 그 달에 맞춰 가신 걸까?





"어디 다쳤어?"


낯선 목소리가 멀리서 나혼자가 아님을 알렸다.


"외상은 없을 텐데?"


볼을 감싸는 온기가 얼어붙은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어?"


떨어지는



눈물




평소같으면 그저 흘러내려 옷에 떨어질 것이 웬일로 눈가에서 멈췄다.


"훗. 많이 놀랐나 봐?"

"...죄송해요."

"훗훗."


 짧게 미소가 퍼지는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분명 도로 위에서의 그는 섬뜩하단 느낌마저 들었는데, 이제 보니 그 얼굴이 익숙하다. 하긴. 도로에서도 그저 놀랐을 뿐, 낯설거나 하진 않았다.


"......감정이 풍부해진 것 같군."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분명 감정 앞에 무슨 단어가 있었는데...뭐지?

의아하게 쳐다보니 느긋한 미소만 돌아올 뿐이었다. 말해줄 생각이 아예 없다는 거지?


"방에 들어가면 침대 있어요. 치워드릴테니 거기서 주무세요."

"소파에서 자지."

"그래도 손님이신데..."

"남자잖아."

"생명의 은인이시도 하고..."


내가 토를 다니 귀찮단 얼굴을 한다. 짜증을 낼 거 같아 내가 먼저 소리쳤다.


"감사함이라도 표하고 싶어요!"


잠시간의 정적.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네!"

"그러면 몇 일 묵게 해 줘."

"...?"

"소파에서 잘 테니 몇 일 신세 좀 질게."

"...??"

"그건 싫어? 그러면 바로 나가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팔을 붙들었다. 이대로 두면 진짜 나갈 거 같다. 남한테 빚 지고 사는 건 싫다. 낯설진 않지만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이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만...그래도 도와줄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지내세요!"


하나로 묶은 긴머리가 매력적이다. 앞머리의 그늘이 드리운 눈이 '그래야지'라 말하는 것 같아 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이쪽이 진 빚이 더 크다. 목숨을 빚졌으니.


"언제까지 계실 거에요?"


머리를 한 번 쓰다듬더니 그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 자세가 너무 비슷해서 순간 깜짝놀랐다.


"글쎄."

"무기한인가요?'

"어차피 잠만 잘 거야."

"아..."

"이상한 짓은 안 해."

"아...네-엣?!"

"그게 염려되는 거 아니야?"


그게 그렇게 티가 났나요?!!


"경악한 얼굴로 보지마. 그정도 눈치는 있어."

"애드씨! 그만 놀려요!"

"놀리다니? 난 그런 적 없어. 들어가서 자. 출근해야되지 않나?"


빨개진 얼굴로 시계를 보니...꺅! 수면시간이 5시간도 안 남았어!!

찬물을 맞은 듯 이성이 제자리를 찾자 난 급뒷수습에 들어갔다.


"흠...흠...방금 소리 질러서 미안해요."

"별말씀을."


난 방에 들어가서 커다란 담요를 가지고 나왔다. 우리 집엔 담요가 딱 3장있다. 내가 깔고 잘 거, 내가 덮고 잘 거, 여분 하나. 여분이라고 해봤자 겨울용 이불이지만...


"덮고 자세요. 여름이라지만 그래도 추워요."

"......그래."


그걸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난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버렸다.




**




 거실에서는 은회색 머리의 남자가 천장을 보고있었다. 물끄러미, 그 시선의 끝이 어디에 있는진 알 수 없었으나 꽤나 오래된 일을 회상하는 눈치였다. 천정을 스크린 삼아.


"많이...바꼈네......"


 알테라 접전.

 새로운 코드를 찾겠다며 알테라로 갔던 여왕이 돌아오기 전, 의문의 사건으로 나소드 킹 코어가 폭발하면서 그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후에 폐허 속으로 들어갔으나 모든 것이 종결된 암흑만이 있을 뿐이었다. 파편이라도 있을까 찾아해맸으나 그 어떤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잔해만이 발 아래서 그를 끌어당겼을 뿐. 늪처럼.


 그렇게 연구 끝에 이곳 말고도 다른 세계가 존재한단 것을 깨달았다. 차원을 전전한지 몇 년일까...모습도 그대로고, 신체 또한 그대로인데,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여전히 예전처럼 움직이고, 얼마든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데 이 공허함은...


'이번엔 제대로 찾은 걸까?'


 아직 차원이란 시스템이 어떻게 구동되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전체 인원수는 동일하단 것이 자신의 계산. 그렇다면...

 이마에 손을 올리니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 같다. 여전히 가능성들이 속살거리고 있으나 볼륨이 작아졌다고 해야 하나.





'조만간 알게 되겠지.'








일단은 단서를 찾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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