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기억하고 있다. 살랑이는 연녹색 위에 앉아 빛이 만개한 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새근새근 잠이 들던 시절의 기억을. 꽃내음 가득한 봄바람이 어머니와 내 머리칼을 쓰담을 때 어렴풋이 말했었다.


"엄마."

"왜 그러니 아가?"

"전 엄마가 너무 좋아요."


내 가문이 멸족당하고 어머니께서 나를 구하려다 대신 당하셨을 때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집은 불바다였고, 어머니는 더 이상 내 옆에 없었다. 그 뒤로 물건인 것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이용당하고, 버려지고, 표현할 수 없는 꼴을 많이 당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슬프지만 내가 당한 꼴을 당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타임 트레이서가 됐다.


확률은 50%가 조금 넘는 수준. 성공할 거란 확신도 없었고, 그 전에 시공의 독소로 사망할 확률이 더 높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수 천번, 수 만번의 실패 끝에 내가 태어난 시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대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절망스러웠다. 그렇게 노력해서 겨우 왔는데 어머니는 이미 싸늘한 상태였다. 어째서? 그건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시작된 실험은 육신을 더욱 망가뜨렸다. 시공의 독소는 천천히 내부에서 외부를 잠식해가며 살을 파먹고 장기 속으로 침투하다 못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눈물이 검은색이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쩍 마른 몸은 더 이상 살이 찌지 않았다. 독소정화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지만 이마저도 맞지 않으면 시공을 열 수 없었기에 어거지로 목에 주삿바늘을 꽂으며 실험을 연명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런 수많은 날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엄마?"



눈 앞에 내 것처럼 새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는 여인이 없었더라면.



"아가?"



눈 앞에 날 알아보는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검은색 눈물이 떨어질 일도 없었겠지.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흉측하다 부르는 이런 모습마저 사랑해주셨다. 나는 간호를 받았고, 그냥 어쩌다가 갑자기 아프게 된 장성한 도련님 정도가 되었다. 어머니와 살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난 행복했다. 집에 화재가 나기 전까진.


누가 불을 질렀는지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난 모른다. 그저 벗어나고 싶어했던 과거가 다시 반복되는 것에 겁에 질려버렸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숲 속으로 도망가셨다. 그런 어머니의 손을 붙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간 순간 총성이 울렸다.






"....아가? 아가!"






눈에 보여서 다행이다. 시꺼멓게 변했을지라도 날아오는 은빛 탄환을 붙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몸이 기우뚱하며 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팠다. 아팠고, 그저 아팠으나 풀에 피가 번지듯 미소가 번졌다.




"엄마."

"아가...아가 죽으면 안 돼..아가.."

"전 엄마가 너무 좋아요."




그동안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나 알아봐줘서 고마워요.

이런 모습의 나도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당신 대신 죽을 수 있어서 기뻐요.

엄마.


사랑해요.













불타는 저택에 주인을 잃은 다이너모가 전원이 꺼지기 전 마지막 기록을 파일로 작성한다.


'2016.5.15. 실험 성공.'


저장하기 전에 꺼져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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