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실험하고 나온 마스터마인드는 어지간히 만사가 귀찮았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자 방문이 끼이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다른 이가 침입한 것은 아니었다. 불쾌감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 실험실 밖 욕실로 향하는 복도는 신경질적인 구둣발 소리로 가득 찼다.
"...썰어버릴까."
쥐새끼든, 개미새끼든 지금 눈에 띈다면 얼마든지 자비를 베풀어줄 의사가 있다며 마스터마인드는 새벽임에도 물을 세게 틀었다. 수압에 덜컹거리는 수도꼭지가 맹렬히 흔들리길 수십 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욕조는 신경질적인 연구자를 담아낼 준비를 마쳤다. 짧게 신음을 내뱉으며 더러운 기분을 넘기는 목울대가 핏대를 세운다.
"....뭐야."
열린 문 틈으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보인다. 불쾌함을 명백히 드러내는 어조에 어둠 속 존재는 주사기를 앞둔 실험실 쥐마냥 가볍게 떨었다. 돌아온 대답은 화장실이란 한심한 대답. 생리적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셈치지만 왜 하필 이곳으로 온 건지 감이 오지 않는다.
"방 옆에 있는 것은 장식이냐?"
"고장 났어."
젠장... 이유 모를 욕지기를 내뱉으니 문을 닫는 소음이 귀를 긁는다. 뭐, 아량을 베풀어줄까. 마스터마인드는 눈을 감았다.
"들어와서 일 봐."
머뭇거림도 잠시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욕실 공기를 채운 증기가 일렁인다. 더럽다. 기분이, 식어가는 물처럼 점점 더러워진다.
"......애드."
큰 죄라도 지은 듯 손을 씻던 물줄기가 부르르 떤다. 저를 보는 시선에 의아함과 두려움이 담겨있다. 마스터마인드는 눈을 뜨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것에 조소했다. 바쁘냐는 물음에 연구하러 갈 거란 모범답안이 돌아온다. 피곤하면 너도 들어오란 말에 증폭된 의아함과 의혹에 찬 시선이 따라온다. 그러나 그런 걸 신경 쓸 마스터마인드가 아니다. 듣지 않으면 제 손해지만 거래는 여유로운 자가 이기는 법이다. 마스터마인드는 그걸 잘 알았고 앞에 있는 생쥐는 그걸 몰랐다. 망설임의 그림자가 확인할 것이 있다는 듯 욕조 근처로 오자 맹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탁.'
다이너모가 욕실 문을 닫고 걸어 잠근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할 새도 없이 끌어당겨진 손에 뜨거운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ㅁ...뭐 하는 짓이야!"
물을 머금은 천가지들이 몸을 휘감는다. 움직이기 어렵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안긴 채 애드는 마스터마인드란 존재를 노려봤다. 저를 담은 생기 없는 눈이 느리게 호선을 그리며 휘어진다. 그것이 마치 저를 노리는 칼날 같아 애드는 등골이 싸해짐을 느꼈다.
"흠...맛있어 보이는군."
간 보듯 저를 맛보는 말캉한 살을 몸서리치며 밀어낸다. 그러나 젖은 옷과 자신보다 억센 두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이너모 부를 거야."
"내 다이너모가 폼으로 있는 줄 아는군."
만찬 전 애피타이저를 보듯 먹음직스러워하는 눈빛에 치가 떨렸다. 공포에 저려진 몸이 석고처럼 단단해져 갔다. 맹수는 그것이 만족스럽다는 듯 입가에 잔인한 호선을 그린다.
"무슨 맛일까?'
실험실 안에서 식인이라도 하나란 생각은 거칠게 벗겨진 옷가지와 이어진 달뜬 신음에 쉬이 흩어져버렸다. 수면 위아래를 왔다 갔다 하며 포옥 젖어버린 머리카락이 시야를 괴롭히고 자신의 목을 휘감은 손이 흉터를 짓누름에 어린 나신이 파르르 떤다. 갈망하던 호흡이 허락됐을 때는 아무 것도 망막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절박했으며 자신을 더듬는 악의에 찬 손은 그 주인의 욕망을 채우기 바빴다. 욕실에 있던 가운에 두르는 허리띠가 자신의 손목에 감기고 예쁜 연노랑색 수건이 자신의 시야를 완전히 덮었을 때 귓가를 두드린 것은 희망 하나 없는 새빨간 불길과도 같았다.
"천천히, 음미해주마. 이 몸은 자비로우니까."
웃음소리가 습기를 머금어 질척하다. 자신의 것을 은밀히 자극하며 숨겨둔 입구를 헤집는 손길에 비명이 새어 나오자 맹수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자신의 것으로 진원지를 막아버린다. 말캉한 것들끼리 얽히고설키다 새하얀 송곳니가 토끼의 귀를 씹듯 이를 삽입한다. 씹히는 고통에 말캉한 살덩어리가 격동한다. 세게 약하게 강 약 중간 약. 3/4박자를 맞추듯 박히는 치열에, 붙잡힌 생쥐는 버둥거리지조차 못한 채 간헐적으로 바들거렸다.
"조금은, 말을 들을 의지가 생기지?"
폐에 공기를 들이붓듯 오르락내리락 하는 상체를 손톱으로 긁어 붉은 핏방울이 맺히게 했다. 몸의 열기 때문인지, 새겨진 상흔의 쓰라림 때문인지 먹잇감은 움찔거리며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는 맹수의 손길을 거부하려 들었다. 그것이 맹수의 마음에 들 리 없을 터인데 그 반응이 만족스럽다는 듯 마스터마인드는 조심스레 목덜미에 턱을 괴었다. 바들거리며 움찔거리는 것이 그의 쾌감을 자극했다.
"조금 더... 맛보고 싶어..."
예쁜 색이라며 볼을 한 번 머금었던 입술이 목덜미를 향한다. 간을 보듯 움직이던 애타는 움직임에 짓씹는 고통이 덧씌워진다. 물어뜯긴 자리에는 어김없이 붉음이 방울방울 맺혀 흘러내렸다. 비명마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움직임은 점점 거칠어졌다. 붉게 물든 어깨를 보며 마스터마인드는 분홍빛으로 잘 익은 고깃덩이를 욕실바닥에 눕혔다.
"Good day to die."
다음날 동이 텄을 땐 어찌된 일인지 모두 욕실 앞에 모여 있었다. 새하얗던 바닥에는 누구의 것인지 짐작조차 안 되는 살점과 핏덩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에스퍼, 너 여기서 시공간 열었냐?"
"......헛소리."
계속 거실에서 소파를 차지하고 자고 있던 사람이 이런 일을 벌렸을 리 만무하다. 루나틱 사이커와 사이킥 트레이서는 임무, 아크 트레이서와 타임 트레이서는 연구를 한다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었다. 남은 것은 한 사람.
"무슨 일, .......미친."
기가 찬 욕실 광경을 보며 혀를 찬 것은 긴 머리칼을 단정하게 묶은 사내였다.
"방금 나온 거냐?"
"보시다시피. 욕실 상태가 왜 이래?"
"몰라. 아침에 문 열었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겨우 이런 걸로 기절이라니. 한심하군."
"말 조심해."
"그런데 애드가 안 보이는데?"
"애송이라면 재료 구한다고 이틀 전에 나갔어. 어제는 돌아온다고 했는데 아직 못 구했나 보군."
짧은 조소가 그치자 그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 공학자들을 침묵이 흩어버린다. 암실마냥 검붉은 욕실은 이곳을 사용하고자 하는 녀석들이 치웠다. 마스터마인드는 별 일이라 생각하며 모닝커피를 따랐다. 곁에 와 머그컵에 커피를 따르는 자신의 과거와 똑같은 모습에 마스터마인드는 입맛을 다셨다. 오늘따라 길게 머무는 시선에 아크 트레이서가 망막에 자신을 담는다.
"...할 말이라도?"
"좀 씻어라."
"너야말로."
쏘아붙여진 불쾌함에 마스터마인드는 애틋한 시선으로 황금색 머리띠를 바라보았다.
"너도 씻을 거냐?'
"그래야지."
"저녁엔 내가 쓸 거니까 비워 둬."
통보에 가까운 발언에도 나긋함이 이어지자 아크 트레이서는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며 방으로 돌아갔다.
"웬일이냐? 네가 저런 발언에 가만히 있고."
"귀찮아서."
지극히 그다운 대답에 혀를 차며 각자의 아침거리를 들고 공학자들은 제 갈 길을 갔다. 마지막으로 느긋한 흑자안이 사라지자 부엌에 남은 단 한 쌍의 자안이 가늘어졌다.
'조금 더 달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비렸어.'
어젯밤 들이킨 와인이 별로였다는 듯 마스터마인드는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목울대로 넘어가는 소리가 상쾌했다.
'오늘은 무슨 맛일까?'
행복한 고민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나 그 음흉한 미소의 목격자는 커피 넘어가는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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